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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필 칼럼니스트

《신편호사(新編虎史) Ⅰ》 -21세기에 새로 엮는 범의 역사

「시작하는 군말」

  몇 해 전에 이날치 밴드의 <범 내려 온다>라는 노래가 크게 유행했다. 한국관광공사 제작한 유트브 <Feel the Rhythm of Korea>의 커버 곡이다. 해학적인 힙합 댄스와 함께 “판소리가 조선의 힙합이며 랩”이라는 K-컬쳐의 저력과 현재성에 세계가 찬탄하고 애호했다. 그 덕분에 한국의 도시와 자연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젊은 문화의 공연장이 됐다. 21세기에 한국형 호랑이 ‘범’은 그렇게 되살아났다.

 

             [한국관광공사 이날치 밴드 +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홍보영상]

 

그러나 원작 <수궁가>에서 토끼와 자라의 지혜 다툼에 범이 산에서 내려와 할 수 있는 일은 한바탕 소동일 뿐이다. 아닌게 아니라 그 케이 힙합의 유행 당시에 정치권에서는 은근슬쩍 “범 내려 온다”는 소문을 누군가 맹호출림(猛虎出林)의 뜻으로 퍼뜨린 건지, 아니면 자연스레 대중이 노래말에서 정권에 맞서는 칼잡이 누군가를 연상한 건지 새로운 권력자 유형을 호출하고 있었다. 그 이후 범 내려 온다는 풍문은 사실이 되고 나라는 온통 호환으로 난리 아닌 난리를 호되게 겪고 있는 중이다. 그 노래가 과연 예언시였는지 참요(讖謠)였는지는 후대 역사가 판가름해 줄 것이다. 어쨌거나 범은 21세기의 향유에서도 그 알레고리가 이처럼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작동한다.

 

  전통 시대에는 마마와 호환이 가장 큰 재난이었다. 그러나 과학 기술이 일상을 지배하는 오늘날에도 코로나-19 팬데믹과 호환 못지 않은 대혼란이 근절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정도가 아니다. 천재지변(天災地變)이라고 하늘과 땅의 탓으로 원인을 돌리는 듯한 재변의 실상은 언제나 인간 사회의 약한 고리를 파고 들며 인재(人災)로 드러난다. 재난 대응 시스템이 있어도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책임을 일선 공무원에게만 묻는다. 그것도 사법처리라는 공권력을 들이대면서. 그렇다면 시스템을 총괄하는 책임자는 어떤 책임을 지는가? 아시아 문명권에서 통치자이자 성인으로 떠받들었던 고대의 성왕(聖王)은 바로 천재지변을 다스리고 인재를 막았던 공로가 있어 내내 하나의 전범으로 삼았다. 태평성대를 이룬 어진 임금의 세상에나 나타난다는 기린(麒麟)이니 해치(獬豸)니 추이(酋耳) 등은 한낱 고궁박물관의 유물만이 아니라 어질고 의로운 정신을 되새기기 위한 아이콘이었던 것이다. 금수만도 못하면서 금수를 하찮게 여기는 인간의 세상에서는 마마도 호환도 여전히 창궐한다.

 

 조선의 17세기 문인관료 이서우(李瑞雨)는 《범의 역사》[虎史]라는 이름의 책을 저술한 적이 있다. 오늘날 실물이 전하지는 않지만 제자 오상렴(吳尙濂)의 서문이 있어 대강을 짐작할 수 있다. 또 중국의 16,17세기에도 《범의 동산》[虎苑], 《범의 모꼬지 [虎薈], 《범을 말하다》[談虎] 등의 전문 편찬서가 발간됐다. 이 외에도 동아시아 생태계에서 최상위 포식자였던 호랑이 범에 관한 이런 저런 정보 지식과 이야기는 일본, 월남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 형태로 존재해 왔다.

 

 그것들이 세상에 떠돌던 단순 흥미거리였든 불의한 세상에 불우한 지식인들의 소일거리였든 오늘날 되새길 것이 있다면 범의 역사를 새로 써보았으면 좋겠다. 어쩌면 그것은 생태계와 인간 문명, 권력과 폭력, 재난과 구제 등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가지 덧붙일 말은 범과 호랑이라는 명칭에 관한 것이다. 오늘날 한국어의 쓰임새에서는 ‘호랑이’가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이는 한자 ‘호(虎) + 랑(狼)’의 결합에 접미사 ‘이’를 붙인 것이다. 그에 비해 ‘범’은 우리 고유어이며 유래가 그보다 오래되었다. 어차피 ‘호(虎)’는 주로 복합어의 어원으로 기능하며, ‘랑(狼)’은 사납고 모진 짐승이라는 의미를 덧보태지만 ‘호랑’의 어휘로는 쓰이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글을 쓸 때는 주로 ‘범’을 사용하며, 동아시아로 범위를 확대할 경우에는 범[虎]으로 표기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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