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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중서 칼럼니스트

추석, 여성이 크게 쉬고 노는 날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으로 지루한 장마도, 뜨거운 불볕도 한풀 꺾였다. 멀리서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는 잊고 지낸 어린 날의 동요인양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고향의 부모님은 잘 지내시는지? 빌딩사이로 초라하게 내민 둥근달은 자식에게 폐를 끼칠까 봐 노심초사하시는 어머니의 모습 같아 쳐다보기 죄송스러워 고개를 떨군다. 어머니는 자식이 잘되길 저 달님에게 얼마나 빌고 비셨을까?

 

달은 우리의 마음을 되돌아보게 하고, 쉬어가게 하는 어머니 같다. 태양이 진취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엄한 아버지를 상징한다면, 달은 보수적이고 과거지향적인 자애로운 어머니의 성품을 지녔다. 불가(佛家)에서는 달을 “달빛은 두루 중생에게 비추어 재앙을 쉬게 하는 보살(月光遍照 息災菩薩)”이라하였다. 이렇듯 달은 자식들을 감싸주고 편히 쉬게 하는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상도 경주부에 보면 추석이 시작된 배경을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경주의 6부(部)를 두 편으로 나누어 왕녀(王女)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기 부내(部內)의 여자들을 거느리게 하고서, 가을 7월 16일부터 매일 일찍 대부(大部)의 뜰에 모여 길쌈을 하다가 을야(乙夜, 밤 10시경)에 이르러 헤어지곤 하였다. 8월 보름이 되어 일의 많고 적음을 살핀 후, 진편에서 술과 음식을 준비해 이긴 편에 사례의 의미로 올렸다. 이때 노래와 춤과 온갖 유희를 다하였는데 그것을 가배(嘉俳)라 하였다. 진편의 한 여자가 일어나 춤추며 탄식하기를 ‘회소(會蘇)’ ‘회소’하였는데 그 소리가 슬프고도 운치가 있었다. 후세 사람들이 그 소리를 본떠 노래를 짓고 ‘회소곡(會蘇曲)’이라 하였다.” 이런 연유로 추석은 가배에서 유래한 것으로 가우(嘉優)라고도 불렀으며, 나중에 한가위라 부르게 되었다. ‘한’은 큰, ‘가위’는 놀이를 뜻하므로 크게 즐기며 노는 날이라는 의미이다. 즉, 여자들이 즐겁게 놀고(嘉俳), 넉넉히 나누며(嘉優), 함께 모여 쉬는(會蘇) 날이 추석인 것이다.

 

 

이익의 성호사설(星湖僿說) 인사문(人事門) 정조추석(正朝秋夕) 편을 보면 “우리나라 속절(俗節)에 8월 보름날 성묘하는 일을 추석이라 칭하는데, 이는 정조(正朝:설날)와 더불어 서로 비교된다. 조(朝)는 낮이고 석(夕)은 밤으로서, 하원(下元)에 달이 가장 밝으므로 민속에서 놀이를 하는데 밤을 이용한 것이다.” 하였다. 설날은 낮인 태양을 의미하여 남성 중심인 고싸움, 차전놀이, 줄다리기 등이 이루어졌고, 추석은 밤인 달을 의미하여 밝은 보름달 아래 마을 여자들이 둥글게 모여서 손을 잡고 선창자가 즉흥적으로 가사를 붙여 노래하면, 놀이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강강수월래’하며 빙글빙글 돌면서 밤새 춤추고 노래하여 여성들의 놀이가 주로 밤에 이루어졌다.

 

또한 추석에 산소를 찾는 풍속은 가락국(駕洛國)에서 시작되었다. 시조 수로왕(首露王)의 수릉(首陵)에 정월에는 3일과 7일에, 5월에는 5일에, 8월에는 15일에 제사를 지낸 것이 계속 이어져 백성들이 조상의 산소에 제사를 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도 “추석을 한가위라 하여 술, 고기 등 많은 음식을 장만해 서로 주고받아 베풀고 조상의 무덤을 찾는다.(秋夕曰 漢嘉會 盛滿酒肉飮膳 互相饋遺 秋夕上墓)”고 하였다.

 

 

이처럼 추석은 일상의 가사노동에서 해방되어 먹고, 놀고, 즐기는 날이다. 이번 추석에는 어머니와 며느리가 함께 쉬며 즐거운 시간을 갖도록 남자들이 수고해 보자. 여성들에게 ‘명절증후군’이 도지지 않도록 함께 거들고 ‘수고했다’ 위로하며 가족의 정을 나누다보면 옛 조상들이 실천했던 여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지리라. 그리고 효도의 의미를 되새겨 보자. 한(漢)나라 양웅(揚雄)은 “오래 가질 수 없는 것이 어버이를 모실 수 있는 시간이다. 효자는 어버이를 봉양할 수 있도록 하루하루를 아낀다.(不可得而久者 事親之謂也 孝子愛日)”라 하였다. 공자는 “부모의 연세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나니 한편으로는 오래 사셔서 기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살아계실 날이 얼마 남아있지 않을까 두렵기 때문이다(父母之年 不可不知也 一則以喜 一則以懼)” 하였다.

 

효자는 못 될지언정 이번 추석에는 보름달에게 부끄럽지 않게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부모님은 자식의 효도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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