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경제신문] 1940년대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노트르담' 미식 축구팀의 센터 포지션을 맡고 있는 프랭크 사만스키라고 하는 축구 선수가 어떤 민사 소송에 연루되어 증인으로 법정에 서야 했습니다. 판사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노토르담 미식 축구팀의 선수로 출전한 일이 있습니까?" "예, 있습니다."하고 사만스키가 대답했습니다. 재판장은 지긋하게 좀 비웃는 듯한 표정을 물었습니다. "그래요? 그럼 당신은 스스로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춘 센터라고 생각합니까?" 이 청년은 잠깐 사이를 두었다가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역대 센터들 중 가장 뛰어난 센터라고 생각합니다." 방청객들은 적이 놀랐습니다.
그 자리에 왕 있던 노트르담 축구팀 감독은 더 놀랐습니다. '저 친구가 평소에는 아주 겸손하여 언제나 스스로를 낮추는 사람이었는데 어떻게 이 자리에서는 제가 최고의 센터라고 당돌하게 말하는 거야?' 좀 어이가 없었습니다. 재판이 끝났습니다. 감독이 이 선수를 데리고 나가면서 "자네, 평소에는 그렇지 않더니 오늘은 어떻게 '내가 최고다'하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가?"
청년은 말합니다. "저는 재판장 앞에서 손을 들고 진실 외에는 말하지 않겠다고 선서했습니다. 그래서 진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재판정에 선 사람은 진실을 말하고 진실 외에는 말하지 않겠다고 선서합니다. 그리고 내가 말한 결과가 어떻게 되든지, 주위에 누가 듣고 있든지 누가 보고 있든지, 아무것도 딴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내 진술로 인하여 나한테 어떤 영향이 미칠 것인가 - 이런 것은 생각하면 진실이 아닙니다.
오로지 진실 하나만 생각하고 진실만을 말합니다. '나는 내가 최고의 축구 선수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진실이다!- 나는 당당합니다.' 진실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 중 최고의 재산입니다.
"진실한 증인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여도 거짓말을 뱉는 사람은 속이느니라 진실이라는 이 말은 라틴어로는 시네 세라(sine cera)에서 왔습니다. 이 말은 '밀칠하지 않은'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영어로 번역하면 'sun tested', 즉 "햇빛에 시험해 보다"라는 말 입니다.
이 말이 생기게 된 것은 고대 도자기 산업이 발달하면서 생긴 단어입니다. 우리들이 보아도 값싼 도자기(옹기)는 두껍게 만들기 때문의 불에 구워낼 때 금이 잘 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값비싼 도자기는 얇게 만들고 가볍게 선명한 색깔을 넣습니다. 그러다보니 값비싼 도자기는 불에 구워내기 전이나 구워낸 후에 금이 가는 일이 많았습니다. 정직한 도공은 이런 도자기는 깨어 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정직하지 못한 사람은 이런 도자기에 색소에다 딱딱한 밀초를 섞어 갈라진 틈을 메꾸어 유약을 발라 상품으로 내어놓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알아보기 위해 햇빛에 비추어 밀초를 메꾼 자국이 있나 없나를 확인하였습니다. 그런 후 그런 자국이 없을 때 'sine cera'라는 글을 새겨 놓았다고 합니다.
조셉 파트러 여사는 영국의 교도소에서 죄수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사람입니다. 처음 그녀가 교도소에 들어갈 때 죄수들은 온갖 욕설을 퍼붓고 담요 속으로 숨어버리곤 했습니다. 파트러는 그들을 하나하나 찾아가서 이마에 손을 얹어주고 베개를 바로 놓아주었습니다. 설교도 교훈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죄수들은 차차 이 낯선 여자에게 관심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무슨 이야기든 좋으니 들려 달라고 부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마를 짚어주고 베개를 바로 놓아주는 손길! 그 손은 천 마디의 말보다 힘이 있었습니다. 마음이 통하게 되는 것은 대개의 경우 말로써 되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사랑만이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가끔 나타나는 신기루 현상은 열 또는 찬기운 때문에 대기 밀도의 급변으로 빛이 이상하게 꺾이어, 공중이나 땅 위에 무엇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일종의 대기 현상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이 신기루는 그 형체를 간직하고 있는 사물의 반대편에 나타나기 때문에 신기루를 좇아가다가는 점차 그 실체와는 멀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옛날 사막을 여행하던 대상들에게 있어 신기루의 존재는 그리 달갑지 않은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당장의 필요에 급급한 사람들은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판별할 겨를이 없이 단지 눈앞에 보이는 신기루만을 좇다가 점차 진짜 오아시스와는 거리가 멀어져 결국 물도 없는 사막에서 말라 죽게 되는 것입니다.
위장된 진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신기루만을 좇는 사람들의 결국은 사막의 신기루를 따른 사람과 같이 비참한 최후를 맞는 것입니다. 그렇다 세상에 있는 것은 결국 신기루를 좇는 것입니다.
어느 인디언이 문명인들을 한심하게 보았는지 다음과 같이 문명인들의 삶을 평했습니다.
“문명인은 뭐든지 글로 기록하려 듭니다. 그래서 항상 종이를 가지고 다닙니다. 그들이 오래 기억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도 아닙니다. 도서관에 가보면 책들이 많지만 누가 그 책을 다 읽는단 말인가? 우리는 종이가 필요 없습니다. 진실이 담긴 말은 그의 가슴에 깊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영원히 기억됩니다. 인디언은 결코 그것을 잊어버리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문명인은 기록해놓은 종이를 잃어버리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합니다”
인디언에게는 문명의 발전은 없어도 진실이 있습니다. 문명의 발전과 진실, 어느 것이 더 값진 것인가. 가슴에 진실을 기록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