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잎새라는 소설을 쓴 그 유명한 오헨리는 시골 은행원 출신인데, 재직시에 부정 지출한 일 때문에 옥살이하고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명성을 얻었습니다.
오하이오주의 양심이라 일컫는 죤 그렌은 상원으로서 우주과학을 대표할 만큼 큰 명성을 얻은 사람이지만, 사실 그는 상원 의원에 출마하는 날 목욕탕에서 쓰러져 좌절 상태에 있다가 10년 만에 좌절을 이기고 상원 의원에 당선됐습니다.
돈키호테라는 기막힌 소설을 쓴 쎄르반테스는 해군 장교로 있다가 부정에 개입되어 옥살이하면서 이 소설을 쓰게 되었습니다.
프랭크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39세까지 소아마비 증세로 다리를 절고 고생했지만 은퇴하는 그날까지 미국 대통령직을 역사상 처음으로 4번이나 지낸 사람입니다.
어느 날 참나무가 갈대를 보고 말했습니다. “당신이 자연을 원망하는 것은 당연해요.” “내가 자연을 원망한다고요?” “말은 안 하지만 그렇다는 거예요. 당신은 아주 작은 바람에도 고개를 숙여야 하잖아요. 하지만 나는 태풍이 불어도 까딱하지 않지요. 당신에겐 모든 바람이 태풍이겠지만 나에겐 산들바람이나 마찬가지예요.
만일 당신이 내 잎사귀 밑에서 태어났다면 나의 보호를 받아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갈대는 바람이 부는 대로 몸을 흔들면서 대답했습니다. “당신은 참으로 마음씨가 착하시군요. 이렇듯 저를 걱정해 주신다니….” 갈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평선 끝에서 지금까지 불어왔던 폭풍 중에서 가장 무서운 폭풍이 불어왔습니다. 참나무는 꿋꿋하게 참아냈고, 갈대는 몸을 굽혔습니다.
바람은 점점 힘이 세어져서, 머리를 꿋꿋하게 하늘로 향하고 있던 참나무를 뿌리째 뽑아버렸습니다. 하지만 갈대는 의연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연주를 듣다가 왕이 벌떡 일어났다는 그 유명한 ‘할렐루야’를 작곡한 헨델은 건강이 매우 나빴다고 합니다. 그는 병을 고치기 위해 재산을 모두 탕진했고, 그러고도 모자라서 남의 돈을 빌려 썼습니다. 그러나 건강도 찾지 못했고 돈도 갚지 못했습니다.
결국 반신불수의 비참한 상태로 감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그때 그는 불행했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불후의 음악인 할렐루야를 작곡한 곳은 바로 이 감옥입니다.
소설가 O.헨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은행원으로 근무할 때 부정 대출에 관련되어 감옥에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거기에서 그는 무료함과 고독을 견디는 방편으로 글을 썼습니다. 그것이 저 유명한 마지막 잎새입니다.
떠돌이 땜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빈민 농촌에서 자란 아이가 있었습니다. 아이는 열심히 책을 읽으며 꿈을 키워 존 밀턴과 함께 영국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라는 칭송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천로역정의 작가 존 버니언(1628-1688)입니다. 그는 인생이 꽃필 33세 때 종교재판 때문에 투옥돼 12년간 수감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고통스러운 기간에 가장 빛나는 문학의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천로역정〉은 이때 쓰여진 것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그렇게 찾아다녔던 보물을 고통의 감옥 안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미국의 프린스턴 대학 바로 옆에 아인슈타인 박사의 집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의 외모 때문에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외모에 얽힌 유머가 있을 정도로 못생겼어요.
어느 날 영국의 유명한 물리학자가 아인슈타인 박사를 만나러 찾아갔습니다. 지금 같으면 텔레비전이 있어서 얼굴을 알 수 있겠지만,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거든요.
그런데 그날 아침 아인슈타인 박사는 정원을 가꾸고 있었습니다. 이 젊은 영국과학자가 찾아와 가지고 "이 집이 아인슈타인 박사님 댁이요?"하고 묻자 예 그렇습니다만하고 아인슈타인 박사가 대답을 했어요.
영국과학자는 "아인슈타인 박사님 좀 만나러 왔는데요" 그런데 아인슈타인 박사가 "납니다"라고 "하지를 않고" 그건 왜요?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젊은 사람 하는 말이 "자네가 그건 알아서 뭘 하나? 내가 ***라는 유명한 박산데, 내가 아인슈타인을 만나러 왔는데 네가 왜 물어? 이렇게 면박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더 재미가 나서 "그래도 알아야 말씀을 드릴 것 아닙니까?" 하고 자꾸 골려 주었습니다. 그 사람은 붉으락푸르락 화를 냈고, 급기야는 이놈 저놈 소리까지 입을 담게됐습니다.
그제야 아인슈타인은 "여보게 내가 아인슈타인 일세"하고 정색을 했다고 합니다. 젊은 과학자, 넙죽 땅에 엎드려서 빌었다고 해요.
사람을 외모로 보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사람을 외모로 보고 편견적으로 판단함으로 야기한 실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