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약 300년 전 이조 (숙종) 대왕 때에 전남 곡성에 사는 이지환이라고 한 사람 아내의 내조로 말미암아 출세한 실화가 있습니다.
이지환이가 16세 때 부모님이 별세했습니다. 19세 때 동네 어른들의 주선으로 어떤 아가씨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결혼 생활 3일 만에 식량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부인이 얼마나 낙담이 되겠어요. 그러나 부인은 이미 각오한 바가 있었습니다. 헌 옷을 갈아입고 산에 가서 나무도 하고 삯바느질도 하고 빨래도 하며 모심기도 하고 밭매기도 하면서 남편을 섬겼습니다.
남편이 미안하게 생각하여 지게를 지고 나가려고 하면 부인이 기어코 만류하였습니다. 10년 동안 공부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지환은 아내로 말미암아 힘을 얻어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그동안 계집아이가 하나 생겼습니다. 부인이 아이를 업고 일을 하니 과로도 되고 거기에다 못 먹었으니 영양실조가 되어 얼굴이 누렇게 붓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출세를 위하여 참고 견디었습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은 부인이 남편에게 새 옷을 갈아입히고 맛있는 요리를 준비하여 대접했습니다. 남편이 이유를 물으니 당신과 만난 지가 꼭 10년이 되는 날이기에서 그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준비했다고 대답했습니다.
이지환은 "벌써 10년이 되었구나. 참 세월도 빠르다." 라고 하면서 주는 대로 잘 먹었습니다. 음식을 다 먹고 나니 부인이 보따리를 주면서 <잘 다녀오십시오> 라고 합니다.
이지환이 놀라면서 <어디로 갔다 오라는 것이오>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니 부인이 말하기를 <당신이 10년을 하루와 같이 공부했으니 이제 서울에 가서 과거 시험을 응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라고 합니다.
이지환은 나같은 놈이 어떻게 서울에 간들 급제하겠느냐 하고 주저앉습니다. 부인은 남편을 붙들어 일으키면서 기어이 다녀오라고 합니다.
이지환은 처음에는 주저했지만 간곡한 아내의 권면에 힘을 얻어 출발하기로 결심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부자는 말을 타고 가지만 가난한 사람이 어떻게 말이 있겠는가 걸어서 서울을 향하였습니다. 가면서 배가 고프면 얻어먹고 밤에는 아무 집에 들어가서 자기도 하였습니다.
한 달 두에 충남 부여란 곳에 도착했습니다. 해가 지니 더 갈 수가 없어서 어느 집에 들어가서 하룻밤만 자고 가자고 사정했습니다. 그랬더니 작은 계집아이가 나오더니 <우리 집은 남자 손님 안 받습니다> 고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이지환은 발걸음을 옮겨서 다른 집으로 가려고 하니까 계집아이가 아저씨! 하고 부릅니다. <아주머니가 들어오시라고 했어요> 고 합니다. 이지환은 참 <고맙다> 고 하면서 계집아이의 안내를 받아 들어갔습니다.
집은 아주 깨끗했습니다. 사랑방에 들어가 아주 대접을 잘 받았습니다. 식후에 창문을 열어보니 달이 환히 비치고 있고 백마강이 집 아래로 유유히 흘러가고 있으며 강 저편 산 아래에 소년이 소를 몰고 가는데 <머-엉>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지환이는 황홀한 나머지 <백마강두황독명 (白馬江頭黃犢鳴)이요> 라고 시를 읊었습니다. 백마상 저편에 누런 황소가 운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뒤에 아름다운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기를 <노인산하소년행 (老人山下少年行) 이요> 란 소리가 들립니다. 뜻은 강 저편에 노인산이라 그 아래 소년이 지나간다는 뜻입니다.
이지환이 돌아보니 소복 단장한 절세미인이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집 주인이었습니다. 이지환도 남자인지라 아름다운 연인을 보고 마음이 동하였습니다.
그때 이어 <이가이월금삼월 (離家二月今三月) 이요> 라고 했다. 2월달에 집을 떠났는데 벌써 3월이 되었으니 한달 동안 적적하게 지냈다는 것입니다.
여자가 대꾸하기를 <대각초경야오경(對客初更夜五更) 이요> 라고 했습니다. 손님을 맞이할 때는 초저녁이었는데 벌써 밤이 깊어 잠잘 때가 됐습니다란 뜻입니다.
이 말을 들은 이지환은 마음에 불이 탔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영양실조로 누렇게 부은 아내의 얼굴이 생각났습니다.
자기를 위해 하루가 10년같이 봉사한 아내가 생각났습니다. 지금 자기 앞에 서 있는 기생은 자기 아내보다 지식이 많고 인물도 예뻤습니다. 그러나 아내를 생각하니 도저히 범죄 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이지환은 정신을 차려 <이런 중대지사니까 좀 생각할 여유를 주어야 한다고 마당으로 내려갔습니다. 이리저리 다니면서 틈을 엿보다가 그만 보자기를 들고 다리야 날 살려라고 도망을 치고 말았습니다. 이 죄를 이기는 법은 피하는 길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서울에 온 이지환은 작은 방을 빌려 열심의 과거 날을 기다리면서 밤이 늦도록 공부했습니다. 때마침 숙종 대왕께서 백성 가운데 억울한 사정이 없는가 또는 훌륭한 인재가 없는지 하고 암행할 때였습니다.
어떤 골목길을 지나가니 밤이 늦은데 글 읽는 소리가 들리기에 가까이 가 보았습니다. 행인을 가장하여 하룻밤을 같이 머물기로 했습니다. 서로 인사해 보니 종씨라 반갑다고 의형제를 맺었습니다. 이야기의 꽃이 피어 이지환이가 자기의 걸어온 이야기를 하면 부여에서 있은 사건도 말하였습니다.
왕이 들어신 후 나갔으면 <여자와 같이 살겠다> 고 마음을 알아보기 위해 한마디를 했습니다. 이때 갑자기 이지환이가 성을 내면서 왕의 멱살을 잡고 이놈 죽인다고 박치기했습니다. 너 같은 더러운 놈하고 의형제를 맺을 수 없다고 합니다.
임금이 코피를 흘리면서 겨우 도망쳐 나왔습니다. 심히 아픈 일이었지만 임금은 오래간만에 진실한 인재를 만난 것을 생각하니 심히 기뻤습니다. 환궁 후 이어 과거를 베풀 것을 명하고 시취 제목을 <白馬江頭黃犢鳴> 의 대꾸와 <離家二月今三月> 의 대꾸를 쓰라는 것이었습니다.
응시자가 많았지만 아무도 맞추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지환이는 자기가 당한 일이라 <老人山下少年行 對客初更夜五更> 이라 써서 급제의 영광을 차지했습니다. 임금이 부르신다고 하기에 안내자를 따라가 보았더니 며칠 전에 자기가 멱살을 잡고 박치기를 한 분이 아닌가.
아연실색하여 죽을죄를 지었다고 몰라서 그랬다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왕은 즉석에서 용서해 주고 그를 극진히 대접하여 그동안에 노고를 풀게 하고 그를 전라도 암행어사로 임명해 주었습니다. 그가 금의환양했을 때 그의 부인의 기쁨은 어떠했겠는가?
이지환은 유혹을 물리치고 아내의 공로를 감사했기 때문에 하늘이 돌보아서 성공한 것입니다.










